두 소년 외로움, 진솔하게 노래… 삶과 음악이 血脈 되어 흐른다
[동인문학상]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2] 김태용 ‘러브 노이즈’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
입력 2022.02.23 03:00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브로콜리 펀치’(이유리), ‘러브 노이즈’(김태용)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일찍이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 달랑베르는 ‘음악의 자유’란 글에서 어떤 나라에서든 존중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종교와 정부”라 운을 떼고는, 이어서 프랑스에서는 하나 더 추가할 게 있으니, 그것은 ‘음악’이라고 했다. 세상을 건설해나가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최고의 화음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작곡가가 악보를 베껴 쓰던 시절이었다.
이제 세월은 한참 지나 정부는 둔한 깡통이 되어 혁신을 요구받고 있고, 종교는 분열되어 사방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음악은 나라의 머리에 금관을 올리고자 하는 성가대의 지위에서 내려온다. 정부가 다 감싸 안지 못하는 많은 존재들과 사안들이 온 누리에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생명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있다. 김태용의 ‘러브노이즈’(민음사)는 강물에 노을이 번져 가는 것처럼 외로운 존재들의 인생을 진솔히 들려줄 언어를 찾아 나선 기록이다. 출발 자체가 주인공에게 일어난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한다. 두 소년이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냇가로 수영하러 갔다가 사고가 난다. 물에 빠진 나를 탈영병이 구해줬는데, 살아남은 다른 친구는 집으로 뛰어가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주인공에게 각인된 이 트라우마는, 그를 구해준 이가 읊었던 시들에 연결된다. 모든 우연한 인생들을 쓰다듬어 밝혀줄 언어에 대한 갈망에 불을 피운다. 그 갈망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음악으로 간다. 하지만 그 음악은 이제 웅장한 교향악이 아니다. 하찮은 삶들을 끌어안듯, 소음들을 끌어안아 또 하나의 악절로 만들면서 음악의 둘레를 넓혀 나간다.
지난 작품 ‘음악 이전의 책’에서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통해 여러 목소리들을 하나의 웅얼거림 속에 담으려는 희귀한 시도를 했던 김태용은 이제 음악과 삶이 혈맥처럼 통하는 또 하나의 예술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아직도 예도(藝道)를 향한 몸짓을 잊지 않은 사람의 행보는 아름답다. 그 예술은 박물관에 보존된 예술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상승하는 예술이다. 그의 소설도 거듭 진화할 것이다.
☞ 김태용
– 2005년 등단,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 등,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 ‘벌거숭이들’
– 한국일보문학상(2008), 문지문학상(2012), 김현문학패(2016)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했다고?… 신기한 독서 경험
[동인문학상]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1]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
입력 2022.02.16 03:00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2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브로콜리 펀치’(이유리), ‘러브 노이즈’(김태용)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신기한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브로콜리 펀치’(문학과지성사)에 실린 거의 모든 단편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나 브로콜리 됐어. 오른 손이.”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이 이처럼 느닷없고 뜬금없다.
그뿐인가.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유해를 화분에 담아서 작은 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날 그 나무가 “물”이라고 말한다. 화자는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뭐야 이런 거라면 살아 있을 때랑 똑같잖아, 하고 투덜거리며 컵에 찬물을 반만 떠다가 화분에 갖다 붓고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잎을 천천히 끄덕이며 물을 마신다.
소설 속 화자가 잠시 깜짝 놀랄 뿐 곧 아무렇지도 않게 투덜거리며 물을 갖다 주듯, 독자도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사태에 뭐지? 하면서도 더는 아랑곳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금방 빠져든다. 신기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데, 대개 비현실과 비존재가 출몰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는 어째서 그러하다는 말인가 궁금증을 갖게 되고 그것이 풀릴 때까지 끝내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되지만, 이유리의 소설은 궁금증이 생기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것을 뒤로 숨기며 어느새 독자를 재미난 세계로 달싹 안아 옮겨 놓는다. 궁금증을 풀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불친절하기까지 한데도 말이다.
대체 무엇이 불쑥 나타난 출처 불명의 외계인과 사람이 되어버린 손톱 따위를 개의치 않고 한껏 즐기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이 소설이 그것을 읽는 시간 동안만큼은 우리 안에 주인 노릇하던 의심과 욕심, 성냄과 어리석음을 밖으로 내쫓고 든든히 문을 지켜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사랑만 남겨 둔 방문을.
아닌 게 아니라 가만히 보면 이유리 소설에는 얻기 위해 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의 욕망을 대상에 투사하여 이기를 충족시키려는 방식의 초라하고 왜곡된 사랑은 저 바깥으로 쫓겨나고, 서로의 따뜻한 어깨에 기대는 깊고 참된 위로가 현실과 판타지를 능숙하게 이종 교배하는 작가의 특출한 솜씨로 인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짝이고 반짝인다.
☞ 이유리
–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빨간 열매’로 등단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